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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표지를 보고 딸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기 힘든 엄마와 딸의 갈등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딸에 대하여>는 딸과 엄마의, 모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가족 없이 혼자 맞이하는 죽음의 두려움과 약자와 소수자로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엄마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60대 요양보호사인 엄마는 30대 중반의 딸(그린)이 하나 있다.


엄마는 공부 많이 시킨 잘 키운 딸 하나가 듬직한 사위도 데려오고 사랑스러운 손주도 안겨주길 바란다.


하지만 딸은 여자를 좋아하고 시간 강사로 전전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다.


안 해본 일 없이 고생하며 힘들게 공부시켰는데, 자꾸 엇나가는 딸이 못마땅한 엄마.


남편이 유일한 재산으로 남긴 낡은 주택 하나에서 세를 내주어 나오는 월세로는 생활이 빠듯하다.


요양 병원에서 일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벌고 있는 엄마.


딸은 가계에 보탬은 못될망정 돈이 없어 그 집에 동성 연인(레인)과 함께 들어온다.


딸의 사생활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마주하기 두려워 피해왔다.


하지만 딸과 딸의 연인과 한집에 살게 되며 그동안 억눌려 있던 수많은 감정이 분출한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 종착지는 초라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요양병원에서 돌보고 있는 치매 환자(젠)는 평생을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던 사람이다.


늙고 병들어 요양병원에 들어왔지만, 결혼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았기에 찾아오는 이가 없다.


아무도 찾지 않고 내 몸 하나 내 마음대로 못 가누는 상태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치매 환자를 돌보며 엄마는 딸이 그와 똑같은 처지에 놓일까 봐 두렵다. 


본인의 죽음, 그리고 가족 없이 맞이할 딸의 죽음의 모습이 두렵다.



김혜진, 『딸에 대하여』, 민음사(2017) (바로가기)



엄마의 시선이 아닌 아빠의 시선이었어도, 동성 연인을 데려오는 자식이 딸이 아닌 아들이었어도, 홀로 남겨진 치매 환자가 남성이었어도 갈등과 두려움은 같았을까?


<딸에 대하여>를 읽으며 성 소수자, 무연고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았다.

 

'난 아니니까 괜찮아' 


'내 일 아닌데 뭐'


'내 가족 중에는 없는걸'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나도 모르게 그들을 다른 차원의 사람 또는 약자로 두고 나와는 아예 분리해버렸던 것 아닐까.


그것도 혐오의 한 모습은 아닐까.




[포스트잇]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22-23)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30)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딸애에게 걸었던 기대와 욕심, 가능성과 희망. 그런 것들은 버리고 또 버려도 또다시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얼마나 앙상해지고 공허해져야 그것들은 마침내 나를 놓아줄까.

(97)



난 널 키운다고 직장이고 뭐고 다 버렸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게 불안해서 하니씩 하나씩 포기하다가 결국 다 버렸어. 내가 널 어떻게 키운 줄 아니? 네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어. 세상에. 그런데 어떻게 넌 사사건건 날 이렇게 실망스럽게 하고 슬프게 만들 수 있니, 그러려고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

(101)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169)

 



사람들은 죽은 젠을 치우고 말끔히 침상을 정리한 뒤 새로운 환자를 맞을 것이다. 젠의 딱딱하게 굳은 몸은 아무런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새하얗게 남은 뼛가루에 번호가 매겨지면 무연고자 창고 한 귀퉁이에 놓일 것이다. 그곳에서 유골함만큼의 자리만 차지한 채 10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마른 벌판에 쏟아부어질 것이다. 과거도, 추억도, 유언도, 가르침도, 애도의 말 한다디 없이. 

젠의 죽음은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경고가 될 것이다.

(174)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의 수고로움. 내가 아닌 누군가를 돌보는 것의 지난함. 실은 나는 아름답고 고결해 보이는 이런 일의 끔찍함과 가혹함을 딸애와 그 애에게 알려 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10년 뒤, 20년 뒤, 나를 이렇게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나는 이 애들이 자신들의 노년을, 젊은 날에는 어떻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그때를, 그렇지만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그 순간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책임과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제대로 된 짝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남겨 두고 가는 것이 걱정과 염려, 후회와 원망 같은 감정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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